1993년 3월 24일, 김용주 목사는 백악관을 방문한다.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은 미국교회협의회(NCC) 소속 개신교 서른 한 개(31개) 교단장들을 초청해 오찬을 함께하고 간담회를 가졌다. 김용주 목사는 미주한인장로회 총회장 자격으로 이 모임에 참가했다.

김용주 목사와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

4월, ‘성전 및 청소년 선교 봉사 센터 건립 음악회’가 노던밸리 데마레스트 고등학교 강당에서 열렸다. 성가대원들은 이 날을 위해 매주 토요일을 포함 3개월 여간 연습했다.

성전 및 청소년 선교 봉사 센터 건립 음악회

당시 음악회 소개 신문 기사

9월, 교회설립 8주년 기념예배에서 성전 터를 위한 특별 기도가 있었다. 여기서 한소망교회의 성전 터가 마련될 때까지의 과정을 잠깐 살펴보기로 하자.
1988년 6월 어느날, 루터란 교회 목사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그들이 체육관을 짓는 비용 마련을 위해 인접 부지를 팔 계획인데 땅을 살 의향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협상은 가격이 바뀌고 땅의 크기가 조정되는 수 년 간의 진통 끝에 1.92에이커를 이자를 포함 모두 130여 만 달러를 지불하기로 하고 타결됐다.

김용주 목사와 Derr 목사

그런 가운데 김유봉 장로 가정이 성전대지를 헌납하겠다는 서원대로 약 100만 달러를 헌금했다.
그 헌금을 드리는 수년간 김 장로는 남들보다 못먹고 못입었다. 뉴욕곰탕이란 큰 식당을 했으니 굶지는 않았겠지만 분명 제대로 된 옷은 입지 못했다. 김 장로는 90년대 중반까지도 다 헤어진 70년대 양복을 입고 다녔다. 구역예배 같은 자리에서 식사 할때면 그는 항상 허리띠를 풀고 바지 단추까지 열어 놓아야 했다. 처음 보는 이들은 그를 아주 예의가 없는 사람으로 오해하기 십상이었으나 사실은 몸에 맞는 바지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런 그가 100만 달러라는 거금을 성전 터를 사는데 선뜻 바쳤다. 김 장로는 옥합을 깨는 순수한 마음으로 물질을 주님께 쏟았다고 말한 바 있다.
김 장로가 이같은 헌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부인 김송현 권사의 내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 권사의 눈물어린 기도와 말씀 순종의 신앙이 어우러져 내외는 물론 온 가족이 희생을 함께 감수한 것이다. ‘옥합을 깬 남자’ 김유봉 장로의 헌신과 주님사랑의 신앙은 체육관 입구에 새겨놓은 기념 동판보다도 더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김유봉 장로, 김송현 권사 내외

90년대 김유봉 장로 가족

체육관 기념 동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