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더 생각하는 배려가 필요합니다.
지난 4월 말, 저는 보스턴 한인 교회가 개최하는 심포지움에 참석했습니다. 교회 창립 70주년을 맞아 100여 명이 넘는 한인/2세 목회자, 신학자가 모였는데, 강좌 내용도 좋았지만, 무려 6개월 이상 준비한 보스턴 한인 교회의 한 번 더 생각하는 배려와 섬김에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모든 참석자가 편하도록, 배우고 도전받도록, 기쁘게 참여하도록, 보이지 않는 곳까지 세밀한 배려와 정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비록 2박 3일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심포지움의 주제도 중요하지만, 이를 위해 한 번 더 배려하고 섬기는 교회의 정성과 사랑이 참으로 인상 깊었습니다. 나아가서, 과연 내게도, 우리 교회에도, 이처럼 동역자와 주변 지역에 한 번 더 생각하는 배려가 있었는지, 이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을 했다!’ 이보다 ‘그 일을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했는가?’ 이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왕 할 일이라면, 한 번 더 배려하고 생각해야, 더 많은 열매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 번 더 배려함은 내 입장이 아니라,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성숙함의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하루하루 일상을 살아갈 때, 상대방이 더 깊이 이해하고 동참하도록 무엇이 더 필요할까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일을 기획할 때, 나는 이미 잘 알고 기획하지만, 상대방은 나처럼 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준비하고 배려한다면, 참석하는 모두가 더 큰 기쁨과 은혜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한 번 더 배려하며 생각하려면, 기획한 일을 어떻게 표현하고 공지할 것인가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주일 예배 때, 주보를 통해, 광고를 통해, 교회 행사를 알려도,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이 이를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물론 무관심하고 집중하지 않음도 문제지만, 우리가 상대방을 배려해서 어떻게 표현할지 한 번 더 생각한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또한,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표현이 거칠고 무례하다면, 핵심을 전하지 못한다면,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다면, 열매는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과 교회, 직장과 사업터에서도, 한 번 더 생각하여, 친절하고 정확하게 표현하는 훈련을 해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한 번 배려가 있게 표현하면, 그 결과가 달라지고, 훨씬 더 나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우리가 어떤 일을 행할 때, ‘이 일로 인해 어떤 결과가 있을까? 무엇이 달라질까?’ 한 번 상대방과 공동체를 배려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누구도 지금 행하는 일이 일회성으로 끝나고, 그냥 잊혀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일을 하든지, 이 일이 미래에 교회와 가정, 직장과 사업터에 어떤 영향을 줄지 한 번 더 생각해야 마땅합니다. 이처럼 어떤 일이든, 한 번 더 배려해서, 상대방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어떻게 바르고 선하게, 친절하게 표현할지, 어떤 결과를 얻을지 기대한다면, 얼마나 복될까요? 특히 교회 일은, 매사에 한 번 더 생각하고 배려하는 친절이 있어야, 나도 성장하고, 선한 노력이 기억될 수 있고, 열매도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바쁜 이민자의 삶이지만, 한주도 매사에 한 번 더 배려하고 생각하는 노력이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