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칭찬이 서로를 살릴 수 있습니다.
최근 SNS에 실린 악플 때문에, 유명 연예인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소식을 심심치 않게 듣습니다. 한두 번이 아니라 끊임없이 익명으로 입에 담지 못할 언어 공격을 가하기에, 이를 견디다 못해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악플보다 칭찬과 격려가 많았다면, 이처럼 자살로 생을 마감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의 말은 누군가의 행복과 불행은 물론, 심지어 삶과 죽음을 결정할 정도로 힘이 있기에, 우리부터 책망보다 칭찬을 더 많이 하며 살아가야 할 당위성이 있습니다.
특히 기독교인은 더더욱 누군가를 격려하고 칭찬하며 살아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연약한 나에게 악플보다, 작은 선함에도 칭찬하고 격려하셔서, 구원까지 선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칭찬은 나쁜 점보다 좋은 점을 먼저 보고, 좋은 점에 주목할 때 할 수 있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칭찬은 단순한 의사 표현 방법이 아니라 “나는 너를 인정한다. 너는 값진 사람이다. 너는 소중한 사람이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처럼 칭찬에는 살리고 세우는 능력이 가득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문제는 칭찬이 귀하지만, 일면식도 없는 사람, 나와 전혀 무관하고 멀리 있는 사람을 칭찬할 수는 없습니다. 칭찬은 내가 아는 사람, 나와 관계있는 사람, 가깝고 자주 보는 사람을 향한 관계적 용어입니다. 그러므로 한 교회를 이루는 성도는 서로를 향하여 충분히 칭찬하고 격려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서로를 칭찬하고 격려하는 가정과 교회는 그 관계가 푸근하고 끈끈할 수밖에 없지만, 칭찬보다 악플과 비판, 지적과 책망이 많은 가정과 교회는 동석(同席)은 가능해도 동역(同役)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의 비극은, 사람마다 누구나 선하고 좋은 점이 분명히 있지만, 칭찬에 너무도 인색합니다. 그러나 내가 인정받고 사랑받기 원한다면, 나부터 칭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누구보다 가까운 가족과 교회 동역자부터, 작은 일에도 격려와 칭찬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서로 칭찬하며 격려해야 묵은 감정의 골과 상처가 사라지고 합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칭찬해야 내가 살고 상대방도 살리고, 모두가 살 수 있기에, 사순절을 보내면서, 한주도 가까운 사람부터 칭찬하며 선하고 복된 관계를 맺어가는 승리가 있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