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평안과 육전 편안함 중 무엇을 추구하세요?

국어사전은 편안을 육체적으로 힘들지 않고 걱정 없이 좋은 상황이라고 정의합니다. 반면에 평안, 히브리어 샬롬은 인간의 영적, 육적, 심적, 관계적 모든 면에서 온전한 상황을 의미합니다. 기독교인이 불신자와 다른 가장 큰 차이는 육체적 편안함보다 영적 평안을 추구하며 살아감에 있습니다. 초대교회에서 빈번했던 박해는 육체적 편안함보다 영적 평안을 추구했기에 발생했던 아픔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현대 기독교인은 영적 평안함보다 육체적 편안함을 삶의 목표로 살아갈 때가 더 많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지를 모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바쁘고 분주하다고, 귀찮고 번거롭다고, 영적 평안을 추구하는 삶을 외면합니다. 게다가 팬더믹까지 겹치면서, 예배와 우리 신앙에까지 편안함을 추구하는 모습이 깊이 스며들고 있습니다. 헌신해야 함을 알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나중에 하겠다고’ 미루면서, 동시에 심적인 불편함에 빠져 살아갑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비록 몸은 힘들어도,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삶, 영적 평안함을 더욱 추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육체적 편안함보다 영적 평안함을 추구해야 할 이유는, 맺는 열매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육체적 편안함은 잠깐 좋아 보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퇴색해지고, 마침내 아무런 열매도 남길 수 없습니다. 실제로 편안함은 만족을 모르고 더 큰 편안함을 추구하다가, 그 삶이 피폐해져 갈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비록 육체적으로 불편해도, 영적 평안을 추구하면, 이 땅은 물로 내세에 맺어가는 열매가 달라질 것입니다. 다행히, 아직 안 늦었기에, 지금부터라도 영적 평안함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영적 평안함을 누리려면, 구체적으로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을 먼저 시도해야 합니다. 지금 성령님께서 여러분 심령에 주시는 찔림이 무엇이고, 무엇을 바꾸라고 하십니까? 육체적으로 불편하고 힘들어도, 성령님 음성을 들으면 주저하지 말고 바로 지금부터 새로운 것을 시도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 신앙생활이 계산적이고 육적 편안함을 추구했지만, 이제부터라도 하나님 기뻐하시는 영적 평안을 추구하는 삶으로 재정립되어야 합니다. 어렵지만, 하루하루 영적 평안함을 추구하며 얻는 간증과 열매가 날마다 더 풍성해지길 축복합니다.